칼럼/형사
고소장, 잘 쓴 문장보다 정확한 순서가 먼저입니다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2.05고소장을 직접 써 보려던 피해자분이 가져온 초안을 보면, 첫 장이 감정으로 채워져 있곤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길게 이어지고 정작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한참 뒤에 나옵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고소장을 처음 읽는 수사관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고소장이 하는 일
고소장은 수사기관이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문서입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술이나 수면 상태를 이용했는지, 직장 상하관계가 있었는지, 촬영이나 유포가 있었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조문과 확보해야 할 증거가 달라집니다. 이 구분이 고소장에 드러나야 수사가 필요한 자료부터 움직입니다.
상사의 추행이라면 업무상 위력 관계를 보여 주는 사정이, 술자리 뒤의 피해라면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보여 주는 기록이 중심이 됩니다. 같은 피해라도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수사의 방향이 바뀝니다. 여러 번에 걸친 피해라면 각각을 나눠 적어야 합니다. 날짜를 특정하기 어렵더라도 여러 번 그랬다는 표현보다 시기별로 나누는 편이 수사에 쓸모가 있습니다.
적는 순서
- 가해자와의 관계와 처음 알게 된 경위
- 사건 당일의 시간 순서(만남, 이동, 행위, 직후의 일)
- 거부의 말이나 행동, 그때의 몸과 마음의 상태
- 사건 뒤 가해자의 연락과 피해자가 한 일(진료, 상담, 지인에게 알림)
- 갖고 있는 자료 목록과 수사기관에 확보를 요청할 자료
마지막 항목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가게 CCTV나 숙박업소 출입 기록처럼 피해자가 직접 받을 수 없는 자료는 고소장에 위치와 시간대를 특정해 확보를 요청해야 수사기관이 빨리 움직입니다. 보관 기간이 짧은 자료일수록 그렇습니다.
적지 않는 편이 나은 것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적지 않습니다. 시각이나 횟수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렇다고 적어 두는 것이 나중에 진술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방법입니다. 고소장은 조사에서 한 진술, 법정에서 한 증언과 계속 비교되는 문서입니다.
가해자의 다른 사생활이나 사건과 관계없는 비난도 줄이는 편이 낫습니다. 수사관의 관심을 흐리고, 가해자 측이 고소 동기를 문제 삼는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엄벌을 원하는 마음은 고소장 끝에 짧고 분명하게 적으면 충분합니다.
고소장을 낸 뒤
고소장을 내면 경찰이 고소인 조사 일정을 잡습니다. 고소장에 적은 내용이 조사의 뼈대가 되므로, 제출한 사본을 조사 전에 한 번 더 읽어 두세요. 조사에서 고소장과 다른 기억이 떠오르면 숨기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가해자와 마주칠까 걱정된다면 조사 일정과 장소에 관한 바람도 미리 전해 둘 수 있습니다.
지산은 피해자 쪽 고소를 대리할 때 이 순서로 고소장을 쓰고, 고소인 조사에 함께 들어갑니다. 고소장과 첫 진술이 같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 둘 사이가 어긋날 일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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