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피해자도 진술을 정리해 두어야 하는 이유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8.26고소인 조사 전에 한번 정리해 보자고 말씀드리면, 피해를 입은 분들은 망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인데 준비가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피해자의 진술에 연습한 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산이 고소를 대리할 때도 고소장을 쓰기 전에 기억을 정리하는 일부터 함께 합니다.
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고, 수사기관과 법원은 그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는지를 봅니다. 기억이 뒤섞인 채로 조사를 받으면 실제로 겪은 일인데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확실한 것과 흐린 것을 나눠서
먼저 사건 전후를 시간 순서로 적어 봅니다. 그날 만나게 된 경위, 장소를 옮긴 순서, 문제의 행위, 그 직후에 한 일까지입니다. 기억이 분명한 부분과 흐린 부분은 따로 표시해 둡니다. 날짜가 정확하지 않다면 계절이나 그 무렵의 다른 일, 주고받은 메시지 날짜를 단서로 시기를 좁혀 가면 됩니다. 이 메모가 그대로 조서가 되는 것은 아니고, 쓴 날짜를 적어 두면 언제 정리한 기억인지도 분명해집니다.
흐린 부분을 억지로 채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시각이나 순서를 단정해서 말했다가 메시지나 결제 기록과 다르게 나오면, 그 하나 때문에 진술 전체가 의심받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2차 장소를 나온 뒤였다는 식의 진술이 훨씬 단단합니다.
진술을 받쳐 줄 자료를 옆에 둡니다
- 사건 전후 가해자와 주고받은 메시지 원본
- 직후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은 메시지
- 진료 기록과 상담 기록
- 그날의 결제 내역과 택시 이용 기록
이 자료는 진술을 대신하지 않고, 진술이 사실이라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모을 때는 원본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캡처만 남기고 대화방을 지우면 전송 시각과 앞뒤 맥락이 함께 사라집니다. 가해자가 보낸 사과나 회유 메시지도 중요한 자료이니, 답장은 하지 않더라도 지우지는 마세요.
불편한 질문도 미리 생각해 둡니다
조사에서는 왜 그 자리에 갔는지,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는지, 사건 뒤에 왜 가해자와 연락했는지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피해자를 탓하려는 질문이라기보다 가해자 측 주장에 대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리 생각해 두면 그 자리에서 당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피해와 관계없어 보이는 사생활 질문이 나오면 왜 필요한지 물어도 됩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인격이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성폭력처벌법 제29조 제1항), 피해자는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에 참여하게 하거나(제27조) 신뢰하는 사람의 동석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제34조). 첫 조사를 충분히 준비하는 일은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지 않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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