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술에 취해서'가 성범죄에서 감경 사유가 되기 어려운 이유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6.15성범죄 사건의 상당수는 술자리 끝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너무 취해서 기억이 없다", "술 때문에 판단을 못 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일반 형사 사건이라면 이 사정이 형을 줄이는 근거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성범죄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형법의 원칙과 특례법의 예외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으면 벌하지 않고, 그 능력이 미약하면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술에 몹시 취한 상태도 이론상 심신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스스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같은 조 제3항).
성폭력처벌법 제20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형법 제10조 제1항·제2항과 제11조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합니다. 법원이 재량으로 감경을 배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실제 사건에서 만취를 이유로 한 감경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배경입니다.
흥미로운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제20조는 성폭력범죄 가운데 제2조 제1항 제1호의 죄, 곧 공연음란 등 형법의 성풍속 범죄 일부를 대상에서 빼 두었습니다. 같은 성폭력범죄라도 공연음란에서는 이 특례가 적용되지 않고 형법의 일반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오히려 다른 쟁점을 만듭니다
피의자가 취해 있었다는 사정은 감경보다 고의의 문제로 더 자주 등장합니다. 준강간 사건이라면 상대방의 상태를 알고 이용했는지가 쟁점인데, 기억이 없다는 말만으로는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강제추행이라면 접촉이 의도적이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해 닿은 것인지가 다퉈집니다.
그래서 "취해서 기억이 없다"는 진술은 방어가 아니라 공백으로 남습니다. 수사기관은 그 공백을 고소인의 진술로 채우려 하고, 피의자가 추측으로 채운 부분은 나중에 객관 자료와 어긋나 신빙성을 떨어뜨립니다.
상대방도 취해 있었다면 쟁점은 더 복잡해집니다. 두 사람 모두 기억이 흐린 사건에서는 누가 더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진술이 남아 있는 기록과 더 잘 맞느냐로 승부가 갈립니다.
기억이 끊긴 날을 복원하는 방법
기억 대신 기록으로 그날의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아래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구하기 어려워집니다.
- 카드 결제 내역과 택시 호출, 교통카드 기록
- 술집과 숙소 주변 CCTV 위치
- 함께 있던 사람들의 연락처와 그들이 기억하는 장면
- 그날 밤과 다음 날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시각
조사에서는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 직접 기억하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 구간을 나눠 말해야 합니다. 술을 마셨다는 사정은 반성이나 재범 방지 노력, 예컨대 절주 상담 기록과 함께 양형에서 이야기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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