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돈만 전달했을 뿐'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9.09고액 일당, 서류 전달 업무, 면접은 메신저로 진행. 보이스피싱 수거책 사건의 기록을 펼치면 대개 이런 채용 공고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조사를 앞둔 분들은 한결같이 “저는 시키는 대로 돈만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이 사실이어도 그것만으로는 혐의를 벗기 어렵습니다.
확실히 몰랐어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보이스피싱이라고 분명히 알지 못했더라도, 불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일을 계속했다면 고의를 인정합니다. 이른바 미필적 고의입니다. 그래서 몰랐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그때 정상적인 일로 믿은 이유를 자료로 보여 주는 쪽이 훨씬 중요합니다.
채용될 때 회사 이름을 검색해 봤는지, 사업자등록을 확인했는지, 가족이나 친구에게 새 일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같은 사소한 행동도 정상적인 일로 믿었다는 정황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사기관이 묻는 정황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 근로계약서나 대면 면접 없이 메신저로만 채용됐는지
-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지나치게 많았는지
-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나 대화방을 지우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 받은 현금을 여러 번에 나눠 무통장 입금했는지
한 번 나갔어도 가볍게 끝나지 않습니다
돈을 받아 전달한 사람은 사기의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으로 수사받습니다. 사기죄 법정형은 2025. 12. 23. 개정으로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되었고,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자산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제15조의2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을 정하고 있습니다.
공모 범위를 넓게 보면 내가 직접 받지 않은 피해까지 공소사실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번, 누구에게서 받았는지를 정확히 잘라 내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입니다.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면 포렌식 과정에 참여를 신청해 어떤 자료가 추출되는지 지켜볼 수 있습니다. 내게 불리한 자료만 골라 나오는 것은 아닌지, 이용당했다는 사정을 보여 줄 대화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수거책은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때문에 가장 먼저 특정되고, 여러 번 나갔거나 금액이 크면 체포 뒤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합니다. 피해 회복은 형을 정할 때 크게 반영되므로 피해자가 여럿이면 피해자별로 합의를 시도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피해자에게는 형사공탁을 검토합니다.
새로 생긴 감면 규정
2026. 9. 8. 같은 법에 제17조의2가 신설되었습니다. 수사나 재판에서 다른 사람의 범죄를 밝히는 진술이나 자료를 내거나, 범인 검거와 범죄수익에 관해 제보하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시행 당시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됩니다.
이 규정을 생각하면 겁이 나서 텔레그램 대화를 지우거나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것은 이중으로 손해입니다.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 데다, 조직을 밝힐 자료까지 스스로 버리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지시 메시지와 채용 공고 화면, 보수 입금 내역은 그대로 두시고, 무엇을 언제 낼지는 조사 전에 정하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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