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받을 돈이 있어도 공갈이 되는 순간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6.19“제가 피해자인데 왜 제가 조사를 받아야 하나요?” 공갈 사건 상담은 이 말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잘못한 것은 분명했고,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보낸 몇 줄의 메시지입니다.
무엇을 요구했느냐보다 어떻게 요구했느냐
공갈은 사람에게 겁을 주어 돈이나 재산상 이익을 받아 내는 범죄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형법 제350조). 대법원은 정당한 채권이 있더라도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협박을 써서 돈을 받아 냈다면 공갈이 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0. 2. 25. 선고 99도4305 판결).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사기관은 요구한 금액이 실제 손해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요구하면서 무엇을 내세웠는지를 함께 봅니다.
권리 행사와 공갈 사이의 선
손해를 따져 배상을 청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고 알리는 것은 대체로 정당한 권리 행사로 봅니다. 반면 직장에 알리겠다, 가족에게 말하겠다,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말을 앞세워 실제 손해보다 훨씬 큰돈을 요구하면 공갈로 볼 가능성이 커집니다. 보상을 받고 싶다면 다음 순서를 지키는 편이 안전합니다.
- 치료비, 수리비, 일하지 못한 날의 소득처럼 손해를 자료로 정리해 금액을 정합니다
- 요구는 내용증명이나 지급명령, 소송 같은 정식 절차로 합니다
- 상대의 직장이나 가족, SNS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 주고받은 대화는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둡니다
배우자의 외도 상대나 직장 상사처럼 감정이 크게 얽힌 사건에서 이런 일이 특히 많습니다. 위자료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더라도, 상대의 배우자나 회사에 알리겠다는 말과 함께 금액을 내밀면 그 순간 공갈 시비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돈을 받지 못했어도 미수로 처벌됩니다
상대가 겁을 먹지 않았거나 돈을 보내지 않았어도 공갈을 시작했다면 공갈미수가 됩니다(형법 제352조). 메신저로 요구했다면 그 기록이 그대로 증거가 되므로, 문제 된 문장 하나만이 아니라 앞뒤 대화 전체를 시간 순서로 다시 읽어 봐야 합니다.
상대가 먼저 배상을 약속했는지, 금액을 누가 먼저 꺼냈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다르게 읽힙니다. 고소인이 대화의 일부만 냈다면 나머지를 보충해 맥락을 보여 주는 것이 방어의 중심이 됩니다.
합의해도 사건은 남습니다
공갈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입니다. 받은 돈을 돌려주고 합의하면 처분과 형량에 반영되지만 사건을 끝내는 효과는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 찾아가 요구했다면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로 형이 2분의 1까지 가중될 수 있고, 위험한 물건을 지니고 있었다면 특수공갈이 되어 법정형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으로 올라가며 벌금형이 없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클수록 말이 거칠어지기 쉽습니다. 보상 문제로 상대와 연락하기 전이라면, 보내려는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어 보시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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