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체크카드를 보냈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면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5.05거래 실적을 쌓아야 대출 한도가 나온다며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보내 달라는 연락. 이 말을 믿고 카드를 택배로 보냈다가 몇 주 뒤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받은 돈이 아니라 받기로 한 무엇입니다.
법이 문제 삼는 것은 통장보다 접근매체입니다
흔히 통장을 빌려줬다고 표현하지만 전자금융거래법이 처벌하는 대상은 접근매체입니다. 체크카드와 현금카드, 인증서, 비밀번호처럼 계좌에서 돈을 움직이게 하는 수단과 정보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실물을 건네지 않고 정보만 알려 줬어도 상대가 내 계좌로 거래할 수 있게 했다면 해당할 수 있습니다.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둘을 함께 물릴 수도 있습니다(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8항).
양도와 대여는 요건이 다릅니다
계좌를 아예 넘겨주는 양도는 대가가 없어도 처벌됩니다. 반면 일정 기간 쓰게 하는 대여는 대가를 주고받거나 약속했을 때, 또는 범죄에 쓰일 줄 알았을 때 처벌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대여 사건에서는 카드를 보낼 때 상대가 무엇을 해 주겠다고 했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대법원은 정상적으로는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이 거래 실적을 만들어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하고 체크카드를 보낸 사안에서, 그 기회 자체가 대여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도16946 판결). 돈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곧바로 무혐의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물론 모든 사건이 유죄로 가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금융회사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사칭했는지, 카드를 돌려받기로 했는지, 이상하다고 느낀 뒤 곧바로 신고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넘긴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들어왔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더해 사기 방조나 공범 혐의까지 함께 조사받을 수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그 돈을 직접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보내 줬다면 혐의는 훨씬 무거워집니다.
가족에게 잠깐 쓰라고 카드를 빌려준 경우는 어떨까요. 아무 대가 없이 잠시 쓰게 했고 범죄에 쓰일 줄 몰랐다면 대여 자체로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예 넘겨준 것이라면 대가가 없어도 양도에 해당하고, 그 카드가 범죄에 쓰이면 명의인도 수사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벌금으로 끝나도 남는 불편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벌금형만 받아도 3년, 징역형은 집행유예를 포함해 5년 동안 전자금융거래 제한 대상자로 지정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뱅킹이 막히면 월급 이체와 공과금 납부부터 불편해집니다. 처분 단계에서 이 결과까지 따져 대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계좌가 지급정지됐다는 통지를 받았다면 이의제기 기한부터 확인하시고, 상대와 주고받은 문자와 통화 기록은 지우지 말고 남겨 두세요. 지급정지 이의제기는 명의인이 사기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몰랐다고 보이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카드를 보낼 당시 상황을 설명할 자료가 여기서도 쓰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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