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조서에 서명하기 전 마지막 10분
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1.27조사가 끝났다는 말을 들으면 몸에서 힘이 빠집니다. 서너 시간 같은 질문을 돌려 받다 보면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때 수사관이 출력한 조서를 내밉니다.
수십 쪽이 넘기도 합니다. 조사를 받고 나온 분들이 가장 자주 하는 후회가 이 대목에서 나옵니다. 제대로 읽지 않고 서명했다는 것입니다.
조서는 내 말을 수사관의 문장으로 옮긴 것입니다
조서는 녹취록이 아닙니다. 묻고 답한 내용을 수사관이 요약해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가 '그렇습니다'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가 단정으로 바뀌는 일이 생깁니다. 악의가 없어도 요약하다 보면 생기는 일입니다.
특히 봐야 할 곳은 알고 있었다거나 의도했다는 식의 인식에 관한 문장, 날짜와 시각, 금액입니다. 사기 사건에서는 '그때 갚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는 한 줄이, 폭행 사건에서는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의 순서가 사건의 무게를 바꿉니다.
읽는 요령은 단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기보다, 내가 길게 설명했던 대목을 먼저 찾아 그 설명이 몇 줄로 줄었는지 보세요. 길게 말한 부분이 두어 줄로 줄었다면 무엇이 빠졌는지, 빠진 것 때문에 뜻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고칠 수 있는 권리는 법에 적혀 있습니다
피의자는 조서를 직접 읽거나 읽어 달라고 할 수 있고, 진술한 대로 적히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고쳐 달라고 하거나 이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수사관은 그 내용을 조서에 덧붙여야 하고, 이의를 제기한 부분은 읽을 수 있게 남겨 둬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
그러니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고쳐 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부분이 왜 다른지 내 의견이라도 조서 끝에 적어 달라고 하세요.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서명을 하지 않고 그 경위를 기억해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변호인이 동석했다면 조서를 함께 읽습니다. 혼자 조사를 받았다면 서명하기 전에 잠시 쉬었다가 읽겠다고 말해도 됩니다. 지친 상태로 바로 읽는 것보다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앉는 편이 실수를 줄입니다.
'법정에서 부인하면 된다'는 생각
경찰 조서는 법정에서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충 서명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그런 것은 맞습니다(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 하지만 송치할지, 기소할지를 정하는 것은 바로 그 조서입니다. 재판까지 가지 않고 끝나는 사건이라면 결론도 조서가 정합니다.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해도, 조사한 경찰관이 나와 그때 들은 진술을 증언하는 길이 남아 있습니다(제316조 제1항). 무엇보다 처음 서명한 말과 나중 말이 다르면 왜 바뀌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조서를 읽는 데 30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그 시간도 조사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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