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사

증거에 동의한다는 한마디의 무게

김한솔김한솔 대표 변호사2026.07.29

첫 공판기일에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고 나면 재판장은 증거에 대한 의견을 묻습니다. 증거목록을 처음 받아 보는 피고인은 무슨 뜻인지 모른 채 '다 동의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이 한마디가 재판의 모양을 크게 바꿉니다.

증거 의견은 동의와 부동의 말고도 진정성립이나 내용을 인정하는지 같은 낯선 말로 정리됩니다. 피고인 혼자 그 자리에서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있다면 이 질문에는 보통 변호인이 답하고, 피고인은 미리 함께 정한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면 됩니다.

동의하면 그 서류가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다고 동의한 서류는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면 증거가 됩니다(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 상대방 진술조서에 동의하면 그 사람이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조서에 적힌 말이 그대로 판단 자료가 됩니다. 동의한 뒤에 그 조서의 내용을 다투기는 훨씬 어려워집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경찰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는 원진술자가 법정에서 조서대로 진술했다는 점이 증명되고 피고인 쪽이 그 사람을 신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에야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제312조 제4항). 결국 검사는 그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야 합니다. 피고인 본인의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가 됩니다(제312조 제3항).

부동의가 늘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다투는 사건이라면 핵심 진술조서에 동의하지 않고 반대신문으로 허점을 짚는 것이 기본입니다. 진술이 앞뒤로 어긋나는 곳, 직접 본 것과 전해 들은 것이 섞인 곳은 대개 법정에서야 드러납니다.

그런데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조서에 동의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야 합니다. 피해자로서는 다시 사건을 떠올리며 증언대에 서야 하니 합의 가능성은 멀어지고, 재판부도 그 사정을 봅니다. 잘못은 인정한다면서 증거는 다투는 모습은 반성이 진심인지 의문을 남깁니다.

증거마다 따로 정합니다

증거 의견은 서류마다 따로 밝힙니다. 다투는 대목이 담긴 조서는 부동의하고 나머지는 동의하는 식으로, 재판에서 정말 다툴 곳에 힘을 모읍니다. 사진이나 진단서처럼 다툴 필요가 없는 자료까지 모두 부동의하면 재판만 길어지고 얻는 것은 적습니다.

그러려면 첫 기일 전에 기록을 읽고 증거 하나하나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기록을 보지 못한 채 첫 기일을 맞았다면, 검토한 뒤 다음 기일에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른 채 동의하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한 번 한 동의는 나중에 거둬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증거 의견은 재판의 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어디서 싸우고 어디서 물러설지를 정하는 순간이 바로 이 질문에 답할 때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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