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사
답변서에 '전부 부인합니다'라고 쓰기 전에
김미소 파트너 변호사2026.05.16억울한 마음이 크면 답변서 첫 줄에 '원고 주장을 전부 부인한다'고 쓰고 싶어집니다. 부정행위가 없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써야 합니다. 문제는 일부는 사실인데 전부를 부인하는 경우입니다. 원고가 낸 카톡 한 장으로 그 부인이 무너지면, 재판부는 피고의 다른 말까지 의심하며 읽기 시작합니다.
재판부는 답변서를 처음 읽을 때 사건의 윤곽을 잡습니다. 첫 서면에서 신뢰를 잃으면 뒤에 내는 서면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인상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상간소송은 증인보다 대화 기록 같은 문서로 다투는 비중이 커서, 서면이 앞뒤로 일관된지가 곧 신빙성이 됩니다.
부인이 무너진 뒤에 남는 것
상간소송에서 피고가 다툴 수 있는 지점은 여러 갈래입니다. 기혼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관계가 얼마나 이어졌는지, 당시 원고 부부의 혼인이 어떤 상태였는지, 누가 먼저 관계를 이끌었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처음에 전부 부인했다가 자료가 나오면, 이런 주장을 꺼낼 때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요'라는 반박을 듣게 됩니다.
'몰랐다'는 주장도 같습니다. 처음엔 몰랐다고 했다가 대화 기록이 나오자 중간에 알았다고 말을 바꾸면, 알게 된 뒤 관계를 정리하려 했던 노력까지 믿기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피고가 알 수 없는 사실까지 억지로 인정하거나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고 부부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원고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같은 부분은 '알지 못한다'고 답할 수 있고, 이렇게 답하면 그 사실을 다툰 것으로 추정됩니다(민사소송법 제150조 제2항).
인정할 것과 다툴 것을 나누는 순서
답변서를 쓰기 전에 원고가 낸 증거와 내가 가진 대화 기록 전체를 날짜순으로 나란히 놓아 보세요. 원고 증거로 이미 드러난 사실, 원고가 과장한 부분, 원고가 모르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드러난 사실은 인정하되 그 의미를 다투고, 과장된 부분은 자료로 바로잡는 식으로 나눕니다.
- 교제 기간이 실제보다 길게 적혀 있으면 연락이 끊겼던 기간의 기록으로
- 만남 횟수가 부풀려졌으면 그날 다른 곳에 있었다는 자료로
- 캡처가 앞뒤를 잘라 냈으면 전후 대화 전체로
- 기혼 사실을 안 시점은 미혼이라고 말한 메시지로
인정은 사과문과 다릅니다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원고에게 사과문을 쓰라는 뜻은 아닙니다. 답변서에서 하는 인정은 법원에 대한 진술이어서 범위와 표현을 고를 수 있습니다. 감정이 담긴 긴 반성문보다 날짜와 사실 위주의 짧은 문장이 오히려 금액을 다툴 때 힘을 남깁니다.
한 번 법정에서 인정한 사실은 나중에 거두기 어렵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 자백한 사실을 취소하려면 그것이 진실에 어긋나고 착오로 한 것이라는 점까지 증명해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288조). 그래서 인정할 범위는 자료를 다 본 뒤에 정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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