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사
형사 합의서 한 줄이 민사 청구를 막는 경우
강현우 파트너 변호사2026.03.12폭행이나 사기 피해를 입은 분들이 형사 절차에서 가해자 측과 합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써 주고 합의금을 받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합의서에 무심코 서명한 문장 하나가 나중의 손해배상 청구를 막아 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부제소 문구의 무게
합의서에는 흔히 이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갑니다. 이 문구가 있으면 법원은 합의금으로 손해배상 문제를 모두 정리하기로 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큽니다. 그 뒤에 치료비가 더 들거나 피해액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추가로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합의금이 위자료 명목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도로 한다는 문구가 있으면 나머지 재산상 손해를 따로 청구할 여지가 남습니다. 합의서에 아무 명목도 적혀 있지 않으면 받은 돈이 위자료인지 손해배상금 일부인지를 두고 다시 다투게 됩니다. 어떤 명목으로, 어디까지 정리하는 돈인지가 문장에 드러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통사고처럼 보험이 얽힌 사건이라면 형사 합의금을 나중에 보험사가 지급할 손해배상금에서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가 됩니다. 합의서 문구에 따라 위자료로 보기도 하고 손해배상금 일부로 공제하기도 하므로, 보험 처리 계획과 함께 문구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명 전에 확인할 것
- 합의금이 치료비, 위자료, 재산 피해 가운데 무엇을 포함하는지
- 아직 끝나지 않은 치료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 민사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지
- 합의금을 한꺼번에 받는지, 나눠 받는다면 지급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지
합의금 액수를 정할 때도 형사 절차의 흐름을 함께 봅니다. 가해자 쪽은 선고 전에 합의를 서두르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협상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있지만, 그 시기를 넘기면 민사소송 외에 받을 길이 좁아집니다.
합의금을 나눠 받기로 했다면 처벌불원서를 언제 넘겨줄지도 정해 두어야 합니다. 서면을 먼저 건넸는데 나머지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형사 절차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사라진 뒤라 결국 민사로 받아 내야 합니다.
합의 대신 배상명령도 있습니다
상해, 사기, 횡령 같은 법이 정한 범죄의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가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유죄판결과 함께 직접적인 물적 피해, 치료비, 위자료의 배상을 명령받으면 따로 민사소송을 하지 않고 그 결정으로 집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피해 금액이 특정되지 않거나 배상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으면 배상명령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피해 규모가 크거나 다툴 부분이 많은 사건이라면 민사소송을 따로 준비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형사 판결문과 수사기록은 그 민사소송에서 강한 증거가 됩니다. 합의는 빨리 끝낼 수 있는 길이지만 한 번 서명하면 되돌리기 어려우니, 금액보다 문구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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