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사
진술서는 감정이 아니라 날짜로 씁니다
김미소 파트너 변호사2026.02.14진술서를 써 오시라고 하면 원고는 대개 열 장 넘게 써 옵니다. 결혼한 날부터 배신감까지 하나도 빼지 않으려 합니다. 피고는 반대로 반 장도 쓰기 어려워합니다. 두 경우 모두 마음은 이해되지만, 재판부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습니다.
진술서는 변호사가 쓰는 준비서면과 달리 당사자가 겪은 일을 자기 목소리로 전하는 서면입니다. 그래서 문장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지만, 순서와 사실은 정확해야 합니다.
시간 순서가 뼈대입니다
좋은 진술서는 날짜가 붙은 사건들의 목록에 가깝습니다. 언제 무엇이 있었고, 그때 무엇을 보았고, 그것을 보여 주는 자료가 몇 번 증거인지를 이어서 적습니다. 그 사이에 느낀 감정은 꼭 필요한 곳에 한두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쓰기 전에 달력을 펴 놓고 굵직한 날짜부터 표시해 보세요. 결혼한 날, 외도를 알게 된 날, 상간자와 처음 마주친 날, 별거나 이혼 이야기가 나온 날 같은 것들입니다. 이 날짜들 사이를 채워 나가면 글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 원고: 혼인과 가족 상황, 외도를 알게 된 날과 경위, 그 뒤 상간자와 배우자의 태도, 생활의 변화
- 피고: 처음 만난 경위, 기혼 사실을 안 날과 계기, 알게 된 뒤의 행동, 관계를 정리한 날
양쪽이 자주 하는 실수
원고 진술서에서 흔한 실수는 상간자에 대한 인신공격입니다. 외모나 집안을 깎아내리는 표현은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고, 경우에 따라 모욕 시비가 되기도 합니다. 고통의 크기는 형용사보다 불면으로 병원에 다닌 기록, 아이 앞에서 무너진 일처럼 구체적인 장면으로 전할 때 더 잘 전달됩니다.
피고 진술서에서는 상대 배우자 탓만 하는 글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먼저 다가왔다는 사정은 감액 사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 반복하면 책임을 피하려는 글로 읽힙니다. 기혼 사실을 알게 된 뒤 무엇을 했는지 담담하게 적는 쪽이 낫습니다. 증거 번호를 진술서 안에 적어 두면 재판부가 자료를 찾느라 앞뒤를 오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날 받은 메시지(갑 제3호증)'처럼 괄호로 붙이는 식입니다.
양쪽 모두 기억이 흐릿한 날짜를 단정해서 쓰는 실수도 많이 합니다. 정확히 모르면 '그해 봄 무렵'처럼 쓰고, 자료로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날짜를 적으세요. 단정한 날짜 하나가 자료와 어긋나면 진술서 전체가 흔들립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사실확인서를 받을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날짜와 함께 쓰게 하고, 신분증 사본을 붙입니다.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옮겨 적은 확인서는 힘이 약합니다.
다른 서면과 맞춰 보세요
진술서는 답변서, 준비서면, 그리고 따로 진행되는 이혼소송이나 형사 사건의 진술과 함께 읽힙니다. 날짜 하나만 달라도 상대는 그 틈을 짚습니다. 다 쓴 뒤에는 이미 낸 서면들을 옆에 두고 날짜와 사실이 맞는지 한 줄씩 확인하세요.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면 지나친 표현이 귀에 걸립니다.
진술서에 쓴 내용은 나중에 당사자신문이나 증인신문에서 그대로 질문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내용만 적으세요.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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