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사

소송 전에도 법원을 움직일 수 있다, 증거보전 제도

김미소김미소 파트너 변호사2026.02.09

숙박업소에 CCTV를 보여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업소로서는 당연한 대응입니다. 영상에는 다른 손님의 모습도 담겨 있고, 개인이 요청한다고 내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 사이 저장 장치는 오래된 영상부터 덮어씁니다. 며칠 만에 덮어써지는 곳도 있어 출입 날짜를 안 순간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증거보전은 어떤 제도인가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미리 증거조사를 하지 않으면 그 증거를 쓰기 곤란할 사정이 있을 때 당사자의 신청으로 법원이 증거조사를 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소송을 내기 전에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요구하는 쪽이 개인이 아니라 법원이 되므로 결정이 나오면 업소는 영상을 법원에 내야 합니다. 증거보전으로 조사한 결과는 나중에 본안 소송에서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소송을 낼지 아직 정하지 못했더라도 증거만 먼저 붙잡아 둘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청할 법원도 정해져 있습니다. 소를 내기 전에는 문서를 가진 사람의 거소나 검증할 목적물이 있는 곳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에, 소를 낸 뒤에는 그 증거를 사용할 심급의 법원에 냅니다(제376조).

받아들여지는 신청서의 조건

신청서에는 상대방, 증명할 사실, 보전할 증거, 증거보전의 사유를 적고 그 사유를 소명해야 합니다(제377조). 실무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특정입니다. 어느 업소의 어느 카메라인지,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 좁게 적을수록 법원도 업소도 움직이기 쉽습니다.

  • 업소 이름과 정확한 주소
  • 출입 날짜와 대략의 시간대
  • 그 날짜를 뒷받침하는 자료(카드 결제, 블랙박스 영상, 대화)
  • 영상이 곧 지워질 수 있다는 사정

상간자의 이름을 몰라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청서의 날짜와 첨부 자료의 날짜가 어긋나면 보정 요구가 나오고, 그만큼 영상이 지워질 시간을 주게 됩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업소에 영상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전에 영상이 지워졌다면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결국 신청하는 속도가 결과를 가릅니다. 신청 전에 업소에 전화해 보관 기간을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지만, 증거로 쓰겠다는 말을 하며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조회와는 쓰임이 다릅니다

통신사나 카드사에서 자료를 받는 사실조회와 문서제출명령은 보통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씁니다. 증거보전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증거를 미리 붙잡는 제도입니다. 오래 보관되는 금융 기록은 소송 중에 받아도 늦지 않지만, 덮어써지는 영상은 증거보전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블랙박스 영상도 덮어쓰기 방식이라 사정이 비슷합니다. 내 차의 블랙박스라면 법원을 거칠 필요 없이 메모리카드를 바로 빼서 보관하면 됩니다.

이 제도를 알면 업소와 실랑이하거나 사설 조사업체를 찾을 일이 줄어듭니다. 출입 날짜를 알게 됐다면 그날의 기록부터 정리해 두세요.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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