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업
단가 인하 동의서에 서명했다면 다툴 수 없을까
박종진 파트너 변호사2026.09.03원청이 연말에 협력사들을 모아 놓고 내년 단가를 일괄 조정하겠다고 통보합니다. 며칠 뒤 ‘단가 조정에 동의한다’는 확인서 양식이 메일로 옵니다. 거래를 끊을 수 없는 수급사업자는 서명을 하면서도 이게 나중에 발목을 잡지 않을지 걱정합니다.
법이 부당하다고 ‘보는’ 행위
하도급법 제4조 제1항은 원사업자가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부당하게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거나 그렇게 받도록 강요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행위는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으로 ‘본다’고 정했습니다. 수급사업자가 부당성을 일일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하는 행위
- 협조요청 등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할당한 뒤 그만큼 빼고 대금을 정하는 행위
-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수급사업자를 차별 취급하는 행위
-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로 대금을 정하는 행위
- 원사업자의 경영적자나 판매가격 인하처럼 수급사업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불리하게 대금을 정하는 행위
동의서가 있어도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합의서나 동의서가 있다는 사실이 곧 정상적인 협의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협력사에 같은 비율로 내려온 인하안에 서명만 받은 것이라면 일률적 인하에 해당할 수 있고, 협의 기록 없이 원청이 정한 단가를 통보한 것이라면 일방적 결정으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서명한 경위를 나중에 증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명하기 전에 인하 근거와 적용 시점을 서면으로 물어 두고, 원가 자료를 제출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 기록을 남겨 두세요. 이의를 남긴 메일 한 통이 나중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대금 지급 기한도 함께 보세요
하도급대금은 목적물을 받은 날부터 60일 안의 가능한 짧은 기한으로 정한 지급기일까지 지급해야 합니다(제13조). 지급기일을 정하지 않았거나 60일을 넘겨 정했다면 법이 정한 기일이 적용됩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대금과 지급 방법을 적은 서면을 발급해야 한다는 의무(제3조)도 원사업자에게 있어서, 메신저 발주만으로 일이 시작됐다면 그 자체로 위반이 됩니다.
부당한 대금 결정이나 감액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원사업자는 손해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제35조). 원사업자 입장이라면 단가 조정 때마다 원가 변동이나 물량 변화 같은 근거와 협의 과정을 남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비입니다. 하도급법 적용 대상인지는 두 회사의 규모와 거래 형태로 정해지므로 이 확인이 출발점입니다.
공정위 신고와 민사소송은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정위 절차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같은 제재를, 민사소송은 대금과 손해를 돌려받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공정위 의결서에서 확인된 사실은 민사소송에서 쓸모 있는 자료가 되므로, 두 절차의 주장과 자료를 처음부터 맞춰 두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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