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사

송금 기록은 있는데 상대방이 '그냥 준 돈'이라고 할 때

박종진박종진 파트너 변호사2026.04.09

돈을 보낸 기록은 통장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이 시작되면 상대방은 거의 예외 없이 한 문장으로 맞섭니다. 빌린 게 아니라 받은 돈이라고요. 이 말을 전해 듣고 억울함부터 털어놓는 분이 많지만,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증명입니다.

돈을 보낸 사실과 빌려준 사실은 다릅니다

민법은 소비대차를 금전의 소유권을 넘기고 같은 금액을 돌려받기로 약정하는 계약으로 정합니다(민법 제598조). 대여금을 청구하는 쪽이 증명할 것은 송금 자체가 아니라 돌려받기로 한 약정입니다. 계좌이체 내역은 돈이 건너갔다는 사실만 보여 줄 뿐, 그 돈이 빌려준 것인지 선물인지 투자인지까지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차용증이 없는 사건에서는 송금 전후의 사정이 결론을 가릅니다. 돈을 부탁하는 메시지에 '다음 달까지 돌려줄게'라는 말이 있었는지, 독촉을 받은 상대방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했는지 같은 대목입니다. 반환을 요구받고도 증여였다고 반박하지 않았다면 그 반응도 하나의 사정이 됩니다.

상대방이 증여를 주장한다고 해서 원고가 증여가 아니었다는 점까지 빈틈없이 반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여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사정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내놓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소송 전에 송금 내역과 대화를 날짜순으로 한 장의 표로 맞춰 보면 빈 곳이 어디인지 보입니다.

법원이 함께 살피는 사정들

  •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선물로 주고받기에 자연스러운 금액인지
  • 돈을 보낸 무렵 오간 대화, 특히 용도와 갚을 시기에 관한 말
  • 일부라도 갚았거나 이자 명목으로 돈이 들어온 내역
  • 반환을 요구했을 때 상대방이 보인 반응

연인이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증여 주장이 힘을 얻기 쉽습니다. 생활비나 함께 쓴 비용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반대로 큰 금액을 한 번에 보냈다면 대가 없이 줬다고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정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고 여러 사정을 함께 놓고 판단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남길 수 있는 증거

관계가 이미 틀어졌더라도 늦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빌려준 금액과 날짜를 적어 언제 갚을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 답을 받아 두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금액을 부인하지 않고 갚을 시기만 이야기한다면 그 답장이 차용증 못지않은 자료가 됩니다. 통화 녹음도 쓸 수 있지만 대화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녹음한 것이어야 합니다.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감정이 앞선 메시지에 '그때 도와준 돈'처럼 증여로 읽힐 수 있는 표현을 쓰면 상대방이 바로 그 문장을 증거로 냅니다.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읽어 보시고, 다툼이 클 것 같다면 어떤 문장으로 물을지부터 상의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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