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사

상속포기는 빚을 없애지 않고 자리만 비웁니다

김미소김미소 파트너 변호사2026.02.08

"저만 포기하면 끝나는 거죠?" 상속포기 상담에서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하는 생각입니다. 상속포기는 빚을 없애는 제도가 아니라 내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만드는 제도입니다(민법 제1042조). 내가 빠진 자리는 비어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이 채웁니다.

빚이 옮겨 가는 순서

포기한 사람의 상속분은 같은 순위의 다른 상속인에게 그 상속분 비율대로 돌아가고(제1043조), 같은 순위가 모두 빠지면 다음 순위로 넘어갑니다. 순서는 자녀와 손자녀, 부모와 조부모, 형제자매, 4촌 이내 방계혈족입니다. 법원은 후순위 상속인에게 따로 알려 주지 않으므로 몇 달 뒤 삼촌이나 사촌이 독촉장을 받고서야 사정을 알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4촌 이내 방계혈족에는 삼촌과 고모, 이모, 조카, 사촌이 들어갑니다. 고인에게 자녀도 부모도 형제도 없거나 그들이 모두 포기했다면 이분들이 상속인이 되므로, 가족 범위를 좁게 생각하면 정리가 끝났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배우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상속인인데 자녀만 모두 포기했다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고 손자녀에게는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입니다. 예전에는 이 경우 손자녀도 상속인이 된다고 보아 어린 손주까지 포기 신고를 하던 때가 있었으니, 오래된 인터넷 글은 걸러서 읽어야 합니다.

배우자도 빚을 떠안을 이유가 없어 함께 포기하면 순위는 다시 손자녀, 부모, 형제자매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가 포기하는 방법이 많이 쓰입니다. 한정승인한 사람이 상속인으로 남아 있으니 빚이 다음 순위로 넘어가지 않고, 그 사람도 상속받은 재산 한도에서만 갚으면 됩니다.

한정승인을 맡을 사람을 고를 때

한정승인은 수리 뒤 5일 안의 채권신고 공고,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한 개별 통지, 배당변제까지 청산 절차를 직접 밟아야 합니다. 서류를 챙길 시간이 있고 다른 가족과 연락이 잘 되는 사람이 맡는 편이 낫습니다. 상속재산 목록에서 알고 있는 재산을 일부러 빼면 단순승인으로 볼 수 있으니(제1026조 제3호) 목록을 쓰는 단계부터 꼼꼼해야 합니다.

미성년 자녀가 섞여 있으면 한 번 더 따져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포기하는 경우는 대개 문제가 없지만, 부모는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만 포기하는 식이면 부모와 자녀의 이해가 부딪친다고 보아 자녀를 위한 특별대리인을 따로 세워야 할 수 있습니다. 이 절차에 시간이 걸리니 3개월 기한을 거꾸로 계산해 일찍 시작해야 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방향을 모르고 움직이면 계획 전체가 흔들립니다. 신고 전에 가계도를 한 장 그려 놓고 누가 무엇을 할지, 후순위 친척에게는 누가 어떻게 알릴지까지 함께 정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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