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사
혼인무효와 혼인취소, 이혼과 무엇이 다른가
김미소 파트너 변호사2026.03.31"이혼 기록이 남는 게 싫어요. 결혼 자체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나요?" 사기 결혼이나 입국 목적의 혼인을 겪은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입니다. 법은 이혼 말고도 혼인무효와 혼인취소라는 길을 두고 있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기간이 짧아 어느 길로 갈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혼인무효, 처음부터 합의가 없었던 경우
민법 제815조 제1호는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으면 그 혼인은 무효라고 정합니다. 대법원 2010. 6. 10. 선고 2010므574 판결은 혼인의 합의를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맺으려는 의사의 합치로 봤습니다. 한쪽은 진심이었지만 상대는 입국이나 취업의 수단으로 혼인신고를 했다면, 신고 자체에는 동의했더라도 혼인은 무효입니다.
상대가 몰래 서류를 꾸며 혼인신고를 한 경우도 혼인 합의가 없어 무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혼인무효는 기간 제한 없이 청구할 수 있고(가사소송법 제23조), 조정 없이 바로 소송으로 진행합니다. 무효가 확정되면 처음부터 혼인이 없던 것이 되어 판결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합니다. 반면 결혼 뒤 사이가 나빠졌다는 사정은 무효가 아니라 이혼의 문제입니다.
혼인취소, 기간이 짧은 길
혼인취소는 사기나 강박으로 혼인했거나, 혼인 당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그 밖의 중대한 사유를 알지 못했을 때 등에 청구합니다(민법 제816조). 사기·강박은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부터 3개월(제823조), 중대한 사유는 그 사유를 안 날부터 6개월(제822조)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습니다.
사기라고 해서 과거의 모든 일을 알릴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숨겼고 그것이 혼인을 결정하는 데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따집니다. 숨긴 빚이나 학력처럼 흔히 문제 되는 사정도 그것만으로 바로 취소되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속였는지와 결정에 미친 영향을 함께 봅니다.
강박은 협박이나 폭력으로 원하지 않는 혼인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때 기간은 강박에서 벗어난 날부터 셉니다. 함께 사는 동안 계속 위협을 받았다면 그 상태가 끝난 시점이 언제인지가 쟁점이 되므로, 집을 나온 날짜와 신고 기록 같은 자료가 중요해집니다.
결과는 이렇게 다릅니다
- 혼인무효: 처음부터 혼인이 없던 것이 되고, 그 사이 태어난 자녀는 혼인 외의 출생자가 됨(민법 제855조 제1항)
- 혼인취소: 효력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판결 확정 때부터 혼인이 끝남(제824조)
- 혼인취소에서 자녀의 양육과 면접교섭은 이혼과 같은 규정을 따름(제824조의2)
- 무효나 취소에 책임 있는 상대에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제825조, 제806조)
취소 기간이 지났거나 무효를 입증하기 어렵다면 이혼과 위자료로 방향을 바꿔 검토합니다. '언제 알았는지'가 다툼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사실을 알게 된 날의 메시지나 기록을 바로 남겨 두는 것이 어느 길로 가든 출발점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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