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사
준비서면은 길게 쓸수록 유리할까
박종진 파트너 변호사2026.02.08소송이 길어지면 서면도 길어집니다. 상대방 준비서면을 읽고 나면 반박할 것이 끝없이 떠오르고, 하나라도 빠뜨리면 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수많은 사건 기록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쪽수가 많은 서면보다 쟁점이 바로 보이는 서면이 설득력이 큽니다. 상대방이 길게 쓰면 나도 길게 써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생기지만, 분량으로 맞설 일은 아닙니다.
쟁점별로 나눠 씁니다
준비서면은 상대방 주장을 문단 순서대로 따라가며 반박하기보다, 이 사건에서 다투는 쟁점을 먼저 정하고 쟁점마다 내 주장과 증거를 붙이는 방식이 읽기 좋습니다. 대여금 사건이라면 빌려준 돈인지, 얼마를 갚았는지, 시효가 지났는지처럼 큰 줄기를 세우고 그 아래에 사실을 정리합니다. 서면 첫머리에 이번 서면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두세 줄로 요약해 두면 좋습니다. 재판부가 그 요약을 먼저 읽고 본문으로 들어가므로 긴 서면이라도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상대방 주장 가운데 결론에 영향이 없는 부분까지 일일이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사실과 다른 부분을 그냥 넘기면 인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다툰다는 한 줄로 정리해 두면 됩니다. 같은 이야기를 서면마다 반복하는 것도 피하세요. 앞선 서면에서 한 주장은 그 서면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주장 옆에 증거 번호를 붙입니다
원고가 내는 증거는 갑 제1호증, 피고가 내는 증거는 을 제1호증처럼 번호를 매깁니다. 서면에서 어떤 사실을 말할 때마다 괄호 안에 증거 번호를 적어 두면 재판부가 기록을 찾아보기 쉽습니다. 카카오톡 대화처럼 긴 자료는 중요한 부분에 표시를 하고 몇 쪽인지 적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원본 자료의 내용에는 손을 대지 마세요. 강조는 표시 정도로 하고, 요약이나 번역이 필요하면 별도 문서로 붙입니다.
- 한 쟁점에 소제목 하나
- 날짜는 연월일까지 정확히
- 금액 계산은 표로 정리
- 감정 섞인 표현과 상대방 인신공격은 빼기
- 새 증거를 낼 때는 무엇을 증명하려는지 한 줄 설명
늦게 내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장과 증거는 낼 수 있을 때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재판이 끝나 갈 무렵 새 주장을 꺼내면 재판부가 시기에 늦었다고 보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고, 1심에서 내지 않은 증거를 항소심에서 처음 내면 왜 이제 냈는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상대방 서면을 받으면 언제까지 반박할지 일정을 먼저 정해 두세요.
재판부가 기일에 특정 쟁점을 보완하라고 했다면 그 쟁점부터 답하세요. 묻지 않은 이야기로 서면을 채우면 정작 재판부가 궁금해하는 부분이 묻힙니다.
서면을 다 쓴 뒤에는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읽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 주장 가운데 증거가 붙지 않은 문장, 날짜나 금액이 앞선 서면과 다른 문장이 보이면 그 부분이 상대방의 다음 반박 대상이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서면은 대개 처음보다 짧아집니다. 분량이 줄었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니 상담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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